Sunday, February 16, 2014

사제로 살아가기

한겨레로부터:

내가 잘 아는 교우 한 분이 편지를 보내왔습니다. 10년 넘게 직장생활을 하는 평범한 회사원입니다. “오늘은 퇴근하는데 왜 이리 마음이 허전하고 기운이 빠지는지요. 요즘 제가 회사에서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이런 겁니다. 바보처럼 착해 빠졌다, 헛똑똑이, 잘난 척도 할 줄 모르냐, 술도 잘 먹어야 한다, 윗사람에게 아부하고 정치를 잘해라, 잘못된 건 다 남의 탓, 손해 보는 짓은 절대 금물, 등등입니다. 하지만 제가 어릴 적부터 성당에서 배운 것은 착한 사람 되라, 모두가 내 탓, 이웃은 내 형제, 서로 사랑하고 약한 자를 도와주라는 것들입니다. 달라도 너무 다릅니다. 배운 것과 정반대로 살지 않으면 촌스럽고 무식하고 리더의 자격이 없는 무능력자로 낙인찍혀서 결국은 쫓겨날 수밖에 없습니다. 한데 목구멍이 포도청이니….”

답장을 해줘야 할 텐데 뭐라고 하지요? 회사에서 왕따가 되고 쫓겨나는 한이 있더라도 배운 대로 살라고? 그게 신앙인의 자세요, 순교정신이라고? 그가 그걸 몰라서 물었겠습니까? 그렇다고 세상이 다 그런 거니까 낙오되지 않게 요령껏 살라고, 그게 이 풍진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라고, 좋은 게 좋은 거 아니냐고 두루뭉술하게 넘길 수만도 없는 노릇입니다. 꼭 신앙인이 아니라도 세상을 착하고 바르게 살려고 마음먹은 사람이면 누구나 하게 되는 흔해 빠진 고민인데, 그가 남들처럼 마음 편히 일하고 교회의 가르침에도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게 할 딱 알맞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았습니다. 왜 못할까? 문득 내게도 문제가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의 신앙심은 확고하고 옳은가? 나도 여느 사람들처럼 성직(업)을 단순히 먹고살기 위한 방편쯤으로 치부하는 것은 아닌가?

예수님이 하신 이야기(루가 10, 30 이하)에 등장하는 사제의 모습에서 나를 봅니다. 강도를 만나 죽어가는 사람을 보고도 못 본 체 피해 간 인물입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부정한 것을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는 법이나 관습에 얽매이지 말고 먼저 너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달려가라. 그게 이웃이다.” 예수님은 율법과 전통에 충실한 사제보다 유대교의 기본 상식조차 모르는 이방인의 행동이 더 옳다고 하셨습니다. 명색이 사제인 내가 지금 들어도 얼굴 뜨뜻한 이야기인데 나는 여전히 시시콜콜한 규정들에 목이 매인 채로 눈치를 살피고 있으니 부끄럽습니다.

일약 세계의 스타가 된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 사제 서품식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세상 속으로 들어가 영적으로뿐만 아니라 온몸으로 가르침을 실천하라!” 그는 정치·경제가 나락으로 떨어진 남미 아르헨티나의 교구장이었으니 사회나 교회, 동료 사제들의 속사정들을 너무나 잘 알고 있었겠지요. 그런 그가 취임 원년에 사제는 세상과 단절된 교회 안에서 심신의 안일만을 추구하지 말고 갖가지 상처로 얼룩진 세상 속으로 들어가라고, 흙먼지에 더러워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절대 만만찮은 당부입니다. 그의 뜻을 실천하려면 옷은 물론이고, 맨살마저 상하기 십상이니까요. 엄청난 희생과 손해를 무릅써야 비로소 가능합니다. 부자와 권력자들의 소리는 크고 강하지만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아서 교회의 기득권자인 사제는 저도 모르는 사이에 자칫 대세의 흐름에 휩쓸리기 때문입니다.

설을 쇠고 떡국과 함께 나이를 한 살 더 먹었습니다. 남들 다 하는데 나는 못하랴 싶은 가벼운 마음으로 사제생활을 시작한 건 아닙니다만, 이 신자유주의 세상, 더군다나 지구상에 하나밖에 없는 남북, 동서의 분단과 대립의 땅에서 죽을 때까지 사제로 살아가기란 정말 쉽지 않은 일입니다.


호인수 인천 부개동성당 주임사제

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6231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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