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joice always, pray without ceasing, give thanks in all circumstances"
Thessalonians 5:16-18
골수암으로 투병 중인 영희씨가 백혈구 수치가 악화되어 고비를 맞는 듯하더니 안정적으로 떨어져서 드디어 두달 여 만에 요양병원으로 옮겼으나 일주일 만에 외래 검진중 다시 혈소판 수치가 악화되어 바로 그길로 시립병원에 재입원 했다. 그런데 다시 영희씨를 보러갔더니 요양병원에서의 생활이 너무 싫어서 병원으로 돌아온게 좋다는 것이다. 사실은 드디어 병원에서 퇴원했다고 해서 나는 생활하시는게 더 나으려니 싶어 다행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80대 치매 걸리신 대소변을 가리지 못하는 노인들과 한 방에 계시면서 냄새가 많이 힘드셨다고 한다. 혈압 체크 하러 들어왔던 담당 간호사분도 영희씨가 요양병원이 너무 싫어서 돌아와서 좋다고 하셨다고 전했다.
영희씨의 경우는 기도원 (여기서 안수기도 받는다고 맞고 불로 지진 듯한 상처가 영희씨 온몸에 있고 환자복을 입고 있으니 이게 더 훤히 들여다 보여 안쓰러운 마음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장애인 시설에서 생활했을 때보다 지금 시립병원에서 계시는 것이 더 좋다고 본인도 얘기한다. 시설에서는 늘 똑 같은 죽을 삼시 세끼 먹다가 식사도 병원이 좋고 (그룹홈이나 장애인 시설에 있는 친구들 모두 맛있는 것 먹는 거 참 좋아한다.) 무엇보다도 집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실내에서만 생활하다가 매일 휠체어를 타고 산책하는 게 그리 좋으신 것 같았다. 올케 얘기가 산책한지 두 시간이 되도 들어가자는 소리를 안 한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표정도 더 밝고 편안해 보인다는 것, 삶에 대한 의지를 보이면서도 평생 장애를 안고 어려운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어느 정도 초연한 듯한 모습도 보인다. 그래서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 듯한 평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우리 주위에는 우리가 사소하다고 생각하는 작은 일들을 누리지 못해 간절히 원하는 많은 이들이 있다.
병실에 전화를 해 올케와 통화를 하고 나서 영희씨와 통화를 하곤 하는데 (영희씨는 아주 간단한 말만 할 수 있어서 얼굴을 보고 얘기할 때는 표정과 손짓으로 짐작이 되는 경우가 많은데 전화통화는 좀 힘든 편이다.) 한번은 전화를 하니 다른 환자 보호자께서 받으셨는데 올케는 갔고 영희씨는 잠들어 있다고 나지막한 소리로 얘기를 했다. 그랬더니 영희씨가 깨서 바꿔달라고 했다. 전화해서 자기 안부 묻는 사람은 나밖에 없는 줄 알고 본능적으로 알았던 것 같다. 어찌나 맘이 뭉클하던지 전화하는 거 어려운 일 아니니 자주 하자라고 실천하고 있다.
장애인들을 대하면서 느끼는 것 중의 하나가 내가 사랑을 1만큼 주면 10만큼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들은 그만큼 사랑을 받아들일 그릇이 넉넉하고 순수하기 때문에 가능한 게 아닐까.
비인가 시설이나 인가 받은 곳이나 장애인 시설에 봉사를 나가면서 아쉽고 안타까운 점이 참 많다. 내게 마음을 열었던 복지사 선생님과 늘 하는 얘기가 아이들 입장에서 사랑과 헌신의 마음이 우선이 되어 아이들을 대해야지 하나의 직업이 되서는 안된다는 얘기를 나누곤 한다. 한 장애인 시설은 원장님이 장애 정도가 심한 아이들과 같이 거주하시면서 실질적으로 엄마의 역할을 하시고 계신다.(실제로 아이들도 엄마라고 부르고 또 진정으로 그렇게 생각하는 듯 했다.) 가슴에 이를 잘 새겨두고 있다.
올케의 말이 영희씨가 병이 나아도 안 나아도 걱정이라고 한다. 시설이 안 좋은 요양병원에 보내는 것도 형제들이 결정하는 일이라 본인은 아무 힘이 없다고 했다. 여기는 시립병원이지만 의료진이 서울대 의사분들이라 믿을만 하고 리모델링을 해서 시설도 손색이 없다. 시립이고 영희씨의 경우는 장애인이고 기초생활 수급자라서 비용도 아주 적게 든다. 그런데 상태가 좋아지면 계속 계실 수가 없다. 그래서 영희씨 입장에서는 아마도 적당히 아파 (다행히 영희씨는 항암치료 중에도 통증을 느끼지 않고 식사도 아주 잘 하신다.) 병원에 계속 계시는 게 최선일 거라는 대화도 나눴다. 우리 주위에는 항암치료를 받으면서 병원에 입원중인 상황이 어느 곳에 있을 때보다 더 안락할 수 있는 분들도 계시다는 것이다.
올케는 친정 엄마가 오늘도 정성 드리려고 절에 가셨다고 했다. 올케가 지난 두 달 반 동안 영희씨에게 얼마나 잘 했는지를 잘 알기에 많이 고맙고 영희씨에게도 올케 고맙지요라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이신다. 시설에 있을 때는 내가 갈 때 마다 좋아는 했지만 그렇게 활짝 웃는 모습을 못 보았는데 병원에 계시면서는 잘 웃으신다.
영희씨가 워낙 장기간 입원해 있다 보니 다섯 명이 입원해 있는 입원실 환자들이 갈 때 마다 바뀌곤 하는데 지난 번 방문했을 때 보았던 영희씨 옆 침대를 쓰셨던 30대 여자분은 입원한지 몇 주만에 돌아가셨다고 한다. 너무 젊으신 분이 의사가 가망이 없다고 하자 환자, 남편, 친정 엄마가 밤새워 울면서 서로 미안하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다가 돌아가셔서 충격을 받았다고 올케가 전했다.
건강을 유지하려 노력도 하시면서 맡겨진 일들을 참 성실하게 해 오신 분들이 자각증상도 없이 갑자기 건강검진에서 수치가 안좋게 나와 정밀검사를 했더니 암으로 판정이 되어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계신 분들이 주위에 있다. 고 이태석 신부님도 암으로 투병중일 때 기도 많이 드렸는데 통증이 심해 고생하시다 소천하셨다. 영희씨도 병이 악화되고 있다고 주치의가 말했을 때 (내가 본인이 현재 몸 상태를 알고 준비할 시간을 줘야 하지 않겠냐고 얘기했더니 선생님도 동의를 하셨었다.) 하늘에서 데려가실 거라면 통증없이 고생하지 말고 데려가 주십사는 기도가 드려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상태가 호전되어 많이 기뻤는데, 또 나빠진 것이다.
우리가 건강에 유의를 한다고 하지만 우리의 명은 결국 하늘에서 결정하시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살아있는 기간 동안 하루를 소중하게 여기면서 감사하고 기뻐하고 기도하면서 생활해야 하리라.
영희씨와 같은 병실에서 다른 환자를 간병하는 전문적으로 간병일을 하는 조선족 한 분이 그 동안 암말기 환자들을 돌보면서 겪으셨던 일도 얘기해 주셨다. 보통은 항암치료가 통증을 심하게 유발하기 때문에 매우 고통스럽고 식사를 못하는 경우도 많아 간병인들이 식사하는 것을 못 먹게 훼방하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식사를 컵라면 등으로 때우시기에 4000원 정도하는 병원 구내식당 식사가 훌륭해서 하루 한끼라도 가셔서 드시라고 했더니 돈벌러 왔는데 돈을 쓰실 수 없다고 했다.
그래서 이번에 갈때는 영희씨가 전화로 과자 먹고 싶다고 해서 백화점에 들려 쿠키도 사고 (내가 구워간 쿠키도 잘 먹기는 하지만 예쁜 틴에 든 쿠키를 선물해 주고 싶었다.) 또 늘 장애인 시설이나 병문안 갈때마다 좋은 재료 사다가 집에서 구운 빵을 가져갔고 영희씨가 잘 먹었기 때문에 이번에도 사워크림 케익을 구워갔다. 암으로 투병중이신 다른 환자분들, 간병인, 보호자 분들과 나눠먹으려고 넉넉히 준비해 가서 음료수도 나눠 먹으면서 병실에서 우리끼리 작은 파티를 가졌다. 마침 체크 하러 들렸던 간호사분도 조인했다. 이미 내가 구워간 쿠키, 빵등을 맛본 올케는 별로 달지도 않고 맛있다고 하면서 빵굽는 거 어렵지 않냐고 해서 오븐 요리보다 한식 잘 하는게 더 어려워요 했더니 정말요 하면서 함께 웃었다. 햇살이 눈부셨던 아름다운 2011년 5월 주말 오후의 순간이 영희씨 기억에 좋은 추억으로 남기를 바라면서.
어떠한 상황에서도 지속되는 깊은 하나님의 사랑
Saturday, May 28,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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